연일 이어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를 계기로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표현)’ 금지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떤 발언을 혐오 발언으로 규정할지 등이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대표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은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한 게 골자다. 개정안은 집회 주최자와 질서유지인, 참가자가 반복적으로 특정 대상과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거나 폭력적 행위를 선동해 국민의 안전에 직접적 위협을 끼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음향·화상·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에 포함했다. 개정안은 또 집회·시위 금지 사유에 ‘소음과 진동, 타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추가했다.
윤영찬 민주당 의원도 8일 헤이트 스피치 금지를 골자로 한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혐오표현’이란 정의 조항이 별도로 신설된다. 이어 개정안은 혐오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했다.
‘혐오표현을 통해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경우’를 집회·시위 금지 대상에 넣었다. ‘상업적 목적만을 위하여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하거나 이를 중계방송하여 후원금 등을 모금하는 행위’도 집회·시위 금지 대상이다.
지난달 30일 문 전 대통령 비서실은 “평온했던 마을이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이 됐다. 마을 어르신들은 매일같이 확성기 소음과 원색적인 욕설에 시달리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시위를 막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윤건영 의원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 17명은 31일 "문 전 대통령이 고향으로 내려간 이후 평온했던 양산의 평산마을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막말이 주민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참혹한 현장이 됐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 윤영찬 한병도 의원 등은 지난 1일 사저 앞 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양산경찰서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이번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안 발의를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이어 "헤이트 스피치의 원조는 다름 아닌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의원 등 유력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당론을 반대하는 의견에는 어김없이 18원 후원금과 문자폭탄이 쏟아졌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강성 팬덤 정치와 먼저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입법 논의와 별개로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서 '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가 계속되는데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취재진의 물음에 "글쎄, 뭐, 대통령 집무실(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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